“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조금만 참았더라면…”
과거의 선택을 자꾸 떠올리며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이 글에서는 후회 감정의 심리적 구조,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리고 상담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 후회는 감정이 하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밤에 잠들기 전, 또는 무심코 길을 걷다가 과거의 어떤 장면이 떠올라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 선택의 순간을 되돌아가며 끊임없이 후회를 반복합니다.
이런 감정은 때로는 ‘생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만들어내는 생각, 즉 정서적 사고입니다.
후회는 단순한 판단의 오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내가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거나, 감정을 놓친 경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감정이 격해져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거나, 용기 내지 못해 기회를 놓쳤을 때, 그 상황 속에는 단순한 판단 실수보다 나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행동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감정을 ‘생각’이라는 틀로 계속 되짚다 보면 후회는 반복되고, 마치 내가 늘 잘못된 선택만을 해온 것처럼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후회는 종종 ‘지금의 나’로 ‘그때의 나’를 평가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 더 많은 경험을 쌓은 지금의 시선으로 과거의 나를 보면 어리석거나 미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정보, 감정, 상황 속에서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후회란 결국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지나치게 냉정하게 바라보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회를 멈추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당시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후회는 ‘내가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나왔다는 걸 스스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자기 비난은 나를 지키는 듯하지만, 결국 무너뜨립니다
후회와 함께 따라오는 감정이 바로 자기 비난입니다.
“역시 나는 안 돼”,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런 결정을 한 내가 바보였지”
이런 말들은 겉보기엔 스스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계속해서 깎아내리는 감정적 습관일 수 있습니다.
자기 비난은 처음엔 일종의 자기반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그것은 반성의 영역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실수했다’가 아니라 ‘나는 원래 문제 있는 사람이다’로 생각이 번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감정 회복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자기 비난은 나를 통제하거나 조심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 에너지와 자존감을 갉아먹는 내면의 공격자가 됩니다.
특히 자신에게 유난히 가혹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라온 환경에서 감정 표현이 억압되었거나, 인정받기 위해 늘 완벽해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이 정도는 참아야지”, “내가 잘못했을 거야”라는 말이 습관처럼 내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겉보기에는 겸손하거나 성숙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와 돌봄입니다. 그때의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감정에 휘말려 있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되, 그것을 정죄의 시선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어야, 다음 선택에서도 나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 상담은 후회와 감정을 분리해 주는 공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후회하는 마음을 줄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후회가 줄어들었다기보다,
그 감정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상담은 그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수많은 후회의 언어와 감정을 하나하나 꺼내어
그 맥락을 새롭게 조명해 주는 과정입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탐색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이
“그 상황에서 나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을까?”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후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 안에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또한 상담은 내가 나에게 얼마나 냉정한 말을 해왔는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알아차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상담자는 ‘지금 이 말이 나를 보호하고 있는지, 공격하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며,
자기 비난을 멈추고 자기 이해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만들어줍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경험을 얻게 됩니다.
상담은 감정을 무시하거나 밀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과 마주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감정과 후회를 분리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나를 더 덜 괴롭히게 됩니다.
우리는 후회를 통해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 후회가 지나쳐서 자기 비난으로 굳어지면, 마음은 무너지고 삶의 발걸음도 느려집니다.
상담은 그 과정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과거의 나를 정죄하는 대신 이해하고, 오늘의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를 넘어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