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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담에서 ‘가계도 그리기’는 왜 중요할까? – 제노그램이 말해주는 가족의 진실

by info-9trillion-blog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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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담에서 빠지지 않는 과정 중 하나인 ‘가계도 그리기’, 단순한 가족관계 정리가 아닌 정서적 연결과 반복되는 갈등의 패턴을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노그램(Genogram)의 개념, 활용법, 실제 상담에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1. 가족 상담의 출발점, 왜 가계도를 그릴까?

가족 상담에서 가계도를 그리는 과정은 단순한 ‘형제 관계 정리’가 아닙니다. 이 작업은 마치 ‘가족 심리의 지도’를 펼치는 일과도 같습니다.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 흐름, 갈등의 축, 친밀도, 분리·단절 상태 등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관계의 역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상담에 참여한 한 중년 여성은 “엄마와 사이가 어릴 때부터 항상 좋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지만, 가계도를 그리며 돌아보니 외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도 지속적인 감정 충돌과 소통 단절이 반복되어 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있는 감정 패턴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습니다.

가계도는 이처럼 지금의 갈등을 개인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심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주죠.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내담자와 상담자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이 작업은 서로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2. 제노그램이란 무엇인가?

제노그램(Genogram)은 단순한 가계도의 확장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담 현장에서 **정서적 흐름, 관계의 강도, 반복되는 갈등 구조를 기호와 선으로 표현하는 ‘심리적 지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제노그램은 최소 3세대 이상을 포함하며, 각각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 간의 정서적 거리 및 상호작용을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사이가 갈등이 잦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상담자는 그 가족의 제노그램을 통해 그 이전 세대, 조부모와 부모 간에도 유사한 갈등 구조가 있었는지를 확인합니다. 감정적으로 서로 멀어진 관계는 점선으로, 극단적인 갈등은 번개 기호로,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의 가족력은 특정 기호로 나타냅니다.

상담자는 이를 통해 ‘이 가족이 어떻게 지금의 구조로 형성되었는가’를 도식화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복잡했던 가족 감정이 구조화되며 자신이 마치 거대한 흐름 속에 위치한 하나의 지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책이나 비난을 넘어서 이해와 자기 연민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제노그램이 무엇인지 나타내는 이미지

3. 제노그램으로 알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

많은 가족이 겉으로는 평범하고 조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상담실에서 제노그램을 그리고 나면 그 안에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감정의 파편들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외견상 서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도, 제노그램상에서는 오랜 정서적 단절과 역할에 대한 불만, 말하지 못한 분노와 허탈감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예로, 삼 형제 중 막내만 유독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우, 제노그램을 통해 가계를 살펴보면 막내에게 집중된 부모의 기대,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 구조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은 개인의 성향이 아닌 가족 구조의 반영일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제노그램의 가장 큰 힘입니다.

‘왜 우리 집은 늘 대화가 단절될까?’, ‘왜 나는 가족 모임이 불편할까?’ 같은 내면의 질문들이 제노그램을 통해 그 뿌리와 흐름을 찾게 되고, 이는 이후 상담이 진행되는 방향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상담자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4. 상담 현장에서 제노그램이 어떻게 활용되는가?

실제 상담에서는 제노그램을 통해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상담자는 이 작업을 통해 내담자의 과거 경험, 가족 간 얽힌 정서, 숨겨진 관계의 긴장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내담자에게 ‘지금 이 문제를 왜 내가 겪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한 상담 사례에서는 내담자가 지속적으로 배우자와의 갈등을 호소했지만, 상담을 통해 제노그램을 그려보니 내담자 부모도 감정 표현에 매우 인색하고 비판적인 성향이었으며, 내담자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내담자는 갈등의 책임이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학습해 온 정서 반응 방식에서도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죠.

또한, 상담 후반부에는 제노그램을 수정하거나, 그 안에 새로운 감정의 선을 더하는 작업도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단절되어 있던 관계였지만, 상담을 통해 관계 회복의 시도가 이루어진 경우, 기존의 끊어진 선을 점선 또는 실선으로 바꾸는 것처럼요. 이 과정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상징적 ‘회복’의 표현이자, 내담자에게 감정적 치유의 실감을 안겨주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5. 제노그램은 가족을 다시 보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너무도 익숙한 존재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관계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만큼 감정을 숨기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넘어가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노그램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감정의 결들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는 원래 말이 없으신 분이야”라고 말했던 내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무관심 속에 자라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해’가 일어나는 순간이고, 제노그램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힘입니다.

이해는 관계 회복의 첫걸음이며, 제노그램은 그 이해를 위한 가장 직관적인 거울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내 가족과의 거리, 감정의 줄기가 어디서부터 이어졌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을 다르게 보고, 자신을 다르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마무리 –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보세요 

가족은 가장 가깝고도 낯선 존재입니다. 함께 살아가며 수많은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도 깊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으며, 말하지 못한 채 쌓여 결국 '문제'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 간의 갈등은 단순히 누군가의 탓이나 성격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 부모와의 관계, 형제 간의 역할 분담, 세대 간에 내려온 말 없는 규칙과 감정의 흐름이 모여 지금의 가족을 만들어낸 것이죠.
이처럼 가족 문제는 ‘현재’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과정’이며,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의 시작입니다.

제노그램은 바로 그 과정을 시각화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감정의 고리를 끊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단순히 그리는 작업을 넘어,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감정의 길을 만들어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한 장의 제노그램은 단지 선과 기호로 이루어진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감정의 역사이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이해되지 않는 가족 간의 감정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한 번 ‘그려보는’ 것에서 시작해보세요. 상담실에서 제노그램을 마주했을 때,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자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치유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는 가장 따뜻한 첫 걸음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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