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아동은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그림을 통해 풍부한 내면 세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자폐 아동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징과 그림검사 해석 시 주의해야 할 점,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비언어적 표현을 이해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1. 말보다 선명한 감정 표현, 그림으로 나타나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은 감정 표현이나 사회적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림은 말보다 더 자유롭고 즉각적인 표현 방식이기 때문에, 자폐 아동이 가진 내면의 감정, 감각, 관계 인식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상담 장면에서 자폐 아동에게 "오늘 기분이 어땠어?"라고 질문하면 대답이 없거나 “모르겠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종이와 색연필을 건네며 “오늘을 그림으로 표현해 볼래?”라고 하면 의외로 몰입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자폐 아동에게 있어 비언어적 접근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실제 사례로, 언어 표현이 거의 없던 8세 준호는 가족을 그리라는 과제에서 부모, 누나, 본인을 네모난 상자처럼 각진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모든 인물은 표정이 없었고, 몸은 사각형의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대화를 피하고 손도 잘 잡지 않던 준호였지만, 그림 속 구조화된 세계 안에서는 안정감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자폐 아동이 정서보다 구조를 우선시하고, 감정보다 형태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림은 단순한 미술 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통로입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언어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내면 정보의 출처가 될 수 있습니다.
2. 반복, 대칭, 생략 – 그림에 담긴 자폐적 특징
자폐 스펙트럼 아동의 그림에는 그들의 인지적 특성과 감각적 선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반복적인 패턴, 대칭적인 구성, 감정 표현의 생략, 특정 요소의 과도한 강조 등이 있습니다.
반복성과 대칭은 자폐 아동의 감각 안정 전략일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현실 세계에 비해, 그림 속에서는 자신이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자폐 아동은 그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6세 다현이는 나무를 그리는 과제에서 똑같은 나뭇잎을 정확히 30개, 정해진 간격에 맞춰 그리고, 색칠도 동일한 농도로 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 안에서 세상을 질서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또한, 감정 표현의 생략은 자폐 아동의 감정 인식과 표현 능력의 제한에서 비롯됩니다. 그림 속 인물은 표정이 없거나 눈·입이 생략되어 있고, 팔과 다리도 종종 간단한 선으로 처리됩니다. 이러한 특징은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에 대한 거리감을 상징하며, 실제 생활에서 감정적인 연결에 어려움을 느끼는 태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어떤 요소는 오히려 과도하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9세 자폐 아동 민석이는 모든 인물의 귀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그렸는데, 이는 청각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석이는 소리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특정 음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아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자폐 아동의 그림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이 아니라, 감각 자극, 구조화된 세계에 대한 욕구, 관계에 대한 인식 등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상징체계입니다. 해석자는 이 특성을 이해하고 섣불리 '정상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3. 해석은 조심스럽게, 정답보다 ‘의미’를 찾는 과정
자폐 아동의 그림검사를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정답을 찾기'보다 '의미를 함께 탐색하기'**입니다. 일반 아동처럼 상징적 표현을 기대하거나, 인물의 위치와 표정만으로 관계를 해석하려 한다면 오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폐 아동은 은유적 표현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선호합니다. 한 상담 장면에서는 가족 구성원을 모두 ‘자동차’로 표현한 자폐 아동이 있었습니다. 상담자는 처음에 “아이의 관계 인식이 왜곡되었나?”라고 판단했지만, 알고 보니 그 아이는 가족을 자동차 브랜드별로 인식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부모도 평소 아이와 대화할 때 “아빠는 벤츠, 엄마는 현대야”처럼 친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던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이의 사고방식과 생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해석하면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자폐 아동은 타인이 그림을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아이의 설명을 먼저 듣고, 해석을 유도하는 질문을 통해 접근해야 합니다. "왜 이 색을 선택했니?" "이건 어떤 이야기야?" 같은 질문은 아이에게 표현의 기회를 주며 동시에 해석자에게도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림검사는 평가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통로로 사용되어야 하며, 특히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대화'보다 '공감'이 먼저입니다. 아이가 보여주는 고유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그림검사 해석의 시작점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 그림은 말보다 편한 언어입니다. 그들의 선, 색, 구조적인 표현 안에는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 감각을 조절하고 싶은 노력,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으려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상담자는 그 그림을 통해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해석은 '진단'이 아닌 '이해'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